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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798예술구, 공장에서 예술로 피어난 감성의 거리

Healing Nomad Kim 2025. 6. 10. 07:10

태양이 작열하던 베이징의 여름은  엄청 더웠다.
나는 자료수집과 작품구상을 위해 베이징에 1년간 머물던 시간을 틈타, 여러 번이나 이곳 798예술구(798 Art Zone)를 찾았다.


작품을 만든다는 건, 결국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버려진 군수 물자 폐공장이 예술의 심장으로 탈바꿈한 이곳은, 내게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 공간이기도 했다.

 

798은 그저 숫자가 나열된 이름이 아니다.
그 안에는 이곳이 태어나기까지의 역사, 아티스트와 도시가 공존하는 이야기, 그리고 산업과 감성의 교차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 번의 방문으로 부족했다. 오래되고 낡은 하드웨어는 그대로 지만 소프트웨어가 수시로 바뀌는 곳이다.

798예술구 4번 출입구 안내판

 


 

왜 798인가?

798이라는 이름은 그냥 붙여진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이곳은 원래 1950년대 소련과 동독의 기술로 세워진 다수의 국영 공장 중 하나인 798 군수공장이었다. 그 숫자 자체가 공장 번호였고, 군수산업의 상징이었다. 냉전의 잔재가 녹아든 이름은 이제 중국 현대예술의 상징이 되었다.


 

태생의 이유와 역사

당시 ‘다산과 다출(多产多出)’을 기치로 한 공산권 공업화 시대에 지어진 이 공장은 중국의 전자산업 기반을 다진 핵심 시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공장은 낙후되고, 경제 개혁 이후 도시 외곽으로 공장이 이전되면서 이곳은 텅 빈 공간으로 남았다.

 

1995년경부터 빈 공장을 임대한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둘 입주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기계 대신 캔버스가 놓이고, 용접 대신 브러시가 움직이던 공간.


2000년대 초, 자생적으로 형성된 창작 공동체가 정착하면서 798예술구라는 이름이 생기게 된다. 재개발 계획으로 모두 헐린 위기까지 처해졌지만, 예술가들이 닦아 놓은 예술적 인프라로 인해 시민들의 열망으로 그대로 "798예술구역"으로 길이 남게 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798은 오늘날 중국은 물론 세계 아트세계에서 주목받는 복합문화예술지구로 자리 잡았다. 이름 하여

"치죠우빠 이슈취"

그래피티 벽면 앞을 걷는 연인들. 예술은 생활 속에서 피어난다

 

뭐 하는 곳인가?

지금의 798은 단순한 전시공간만은 아니다. 복합문화예술 힐링공간이다.
● 수십 개의 갤러리, 디자인 숍, 콘셉트 스토어
●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기획전
● 젊은 창작자들의 실험적인 퍼포먼스
● 그래피티 아트, 설치 조형,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등

 

모든 것이 과거의 공장구조를 그대로 활용한 채 전시되고 있다. 한국 서울의 성수동에 있던 공장들이 카페로 전시장으로, 악세사리 샵으로 바뀐 것과 유사하다. 홍대앞의 낡은 건물들이 예술가들로 인해 한 때 부흥헀던 것도...젠트리피케이션만 아니었더라면....


콘크리트 벽과 높이 솟은 굴뚝, 녹슨 철문은 이제 오히려 예술의 일부가 되었다. 특히 현지 시민들에게도 “감성 충전소”처럼 자리 잡았기에, 데이트 코스나 출사지로도 인기 있는 곳이다.

낡은 공장 담벼락의 그래피티

 


 

내가 들렀던 공간들

  1. Ullens Center for Contemporary Art (UCCA)
    세계적인 큐레이터들이 기획하는 전시가 열리며, 798의 상징적 공간 중 하나.
  2. 798 Photo Gallery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사진전이 종종 열린다. 흑백사진이 많아 인상 깊었다.
  3. 폐공장 그대로의 야외 조형구역
    낡은 철 구조물과 예술작품이 조우하는 풍경. 사진 찍기에도 그만이다.
  4. Avant Garde 북카페 & 아티스트 커피숍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스케치하며 대화하는 공간. 우연히 한국 작가분과도 대화를 나눴다.
  5. Graffiti Street
    거리 곳곳에 그려진 그래피티는 무심한 듯 강한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798예술구의 대표 갤러리 중 한 곳, 과거의 공장을 그대로 살린 공간이 인상적이다

 

특별한 에피소드 

11월의 어느 날, 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나는 한 갤러리 앞 벤치에 앉아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그때 낯선 중년의 중국인 남성이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혹시 작가분이세요?”


그는 이곳을 매주 걷는 은퇴한 교사였다. 그리고 자신의 꿈은 화가였다고 했다. 말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드로잉을 공유했고, 그는 작은 펜으로 내 스케치 옆에 시 한 줄을 적어주었다.

 

“삶은 무게가 아니라 색으로 기억된다.”

 

나는 그 한 줄의 문장을 아직도 내 스케치북 안에 간직하고 있다.

 

JOY ART 갤러리 벽면의 그래피티가 인상적이다.

 

추천 음식 & 휴식처

  • At Café 798: 798 내부 가장 오래된 카페. 앤티크한 인테리어와 엷은 커피 한 잔 마시며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기에 안성맞춤 카페다.
  • Timezone 8 Bookstore Café: 예술 서적과 함께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서점형 카페.
  • 청춘쿵부(青春工夫) 레스토랑: 퓨전 베이징요리. 관광객보다 예술인들이 자주 찾는 맛집으로 인기가 높다.

 

작품 전시 중인 갤러리 내부

 

기후 정보

7월은 덥고 습한 여름이라 낮 기온이 35도에 육박질러 무척 덥지만, 갤러리 안과 카페 안은 시원해서 작품 감상하며 피서하기도 딱 좋다.


11월은 초겨울로, 서늘하고 맑은 날씨가 많아 예술 거리 산책에 적합하다. 선선한 공기와 예술 작품이 만나면 마음도 시원해진다.


실내외를 오갈 일이 많으니 여름엔 통풍 좋은 옷, 겨울엔 얇은 패딩이나 머플러가 좋다.

 

스트레스 해소? 전시장 벽면 작품, 한글 "홍" 자도 보이네.ㅋㅋ 필자와 그녀

 

숙소 정보

  • The Orchid Hotel Beijing
    위치 : 둥청구, 798까지 택시로 25분
    요금 : 1박 약 100,000원~120,000원
    조식 : 포함 (중식 & 서양식 선택 가능)
    분위기 : 전통 중국 가옥 스타일에 모던한 감성의 부티크 호텔

 

마무리

798예술구를 떠날 때마다 나는 조금 더 예민해진다. 사물의 결, 사람의 눈빛, 벽에 흐르는 그림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폐허 위에 피어난 예술은, 결국 우리 모두의 삶도 그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 아닐까.


예술은 누구나의 것이며,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돌아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