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유/일상 에세이
[에세이] 낡은 창문 아래, 나는 나를 바라보았다 / 798예술구의 어느 오후
Healing Nomad Kim
2025. 8. 21.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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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햇살이 느리게 기울고 있었다.
붉은 벽돌 벽에 스며든 빛은 창틀을 따라 흐르고, 그 아래 나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798예술구의 한 구석, 이름 없는 벤치 위에서.
그 공간은 낯설었지만, 이상하게도 익숙했다.
낡은 공장, 녹슨 파이프, 무심한 그래피티.
누군가에겐 방치된 과거일 그곳이, 내게는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 같았다.
예술은 어디에 있을까.
그림 속에? 조각 속에? 빛과 그림자의 교차 속에?
나는 오래된 철제 창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 창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었지만, 동시에 나를 향해도 열려 있었다.
그 틈으로 들어온 바람은 아주 오래된 기억을 건드렸다.
말하지 못했던 것들.
지나쳐 왔던 감정들.
작가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애써 눌러 담았던 무게들.
예술공간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남이 만든 무엇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내 안의 소리’를 듣는 일.
그날 나는 어떤 그림도 찍지 않았다.
대신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이곳의 침묵이, 나를 다시 그리게 했다.”

798예술구는 예술가의 공간이었고, 동시에 내 공간이었다.
버려진 것 위에 피어난 예술은, 나에게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조용한 확신을 주었다.
다음에도 다시 찾게 될 것이다.
예술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내 마음을 다시 만나러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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